▲ 17살 어린 나이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계순희는 이후 우쭐하지 않고 운동에 전념해 체급으로 올려 가며 세계선수권대회 4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다. 계순희(아래)가 2001년 뮌헨 세계유도선수권대회 52kg급 결승에서 라파엘라 임브리아니(독일)의 굳히기 공격을 방어하고 있다.

[스포티비뉴스=신명철 기자]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정식 종목이 되기 전 복싱 유도 레슬링 ‘격투기 3총사’가 한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는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1948년 런던 대회에서 역도(김성집 동메달)와 함께 메달 레이스를 시작한 복싱(한수안 동메달)은 이후 2018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까지 금메달 3개와 은메달 7개, 동메달 10개의 올림픽 메달을 수확했다. 북한은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 동메달 3개를 거둬들였다. 관련 내용은 [남과 북 모두 ‘한 주먹’ 했는데…] 편에 실려 있다.

격투기 3총사 가운데 하나인 유도도 남북 모두 만만치 않은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은 유도가 처음 정식 종목이 된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재일 동포 김의태(80kg급)가 첫 올림픽 메달(동)을 땄고 북한은 첫 출전한 올림픽인 1972년 뮌헨 대회에서 김용익(63kg급)이 동메달을 차지했다.

이후 한국은 올림픽에서 금메달 11개와 은메달 11개, 동메달 16개의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 일본(금 39 은 19 동 26)과 프랑스(금 14 은 10 동 25)에 이어 3위에 올라 있다. 북한은 금메달 2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4개로 16위에 랭크돼 있다.

한국과 북한은 1956년 출범한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한국은 금메달 27개와 은메달 10개, 동메달 60개로 일본(금 145 은 87 동 105)과 프랑스(금 55 은 34 동 77)에 이어 3위, 북한은 금메달 5개와 은메달 5개, 동메달 8개로 16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첫 금메달리스트는 1981년 마스트리히트(네덜란드) 대회 71kg급 박종학이고 북한은 2001년 뮌헨(독일) 대회 52kg급 계순희다. 계순희는 북한의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1996년 애틀랜타 대회 48kg급)이기도 하다. 한국의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하형주(95kg급)와 안병근(71kg급 이상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이다.

유도는 탁구 축구 등 단일팀을 이룬 종목 못지않게 남북 선수와 지도자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세계 수준의 경기력을 지니고 있어 주요 국제 대회에서 자주 만나기 때문이다.

글쓴이도 북한 유도 선수들과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1990년대 초 탈북한 이창수와는 1987년 서독 에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와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얼굴을 익혔다. 1991년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 이후 이창수는 탈북에 성공했고 글쓴이와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이런 인연으로 글쓴이는 1992년 봄 이창수가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메달리스트들로 이뤄진 유맥회(柔脈會)에 특별 회원으로 가입하는 현장을 사진과 함께 단독 보도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창수의 가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그때 유맥회 회장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63kg급 은메달리스트인 장은경 선생(작고)이다.

이창수의 유맥회 가입을 축하하는 자리에는 하형주와 안병근 박종학 등 한국 유도의 간판 스타들이 함께해 따뜻한 분위기를 이뤘다.

이런 모임이 있기 2년 전인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때는 북한이 운영하는 류경식당에서 남북한 유도인이 한자리에 모여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대회에 참가한 한국과 북한 유도(유술) 관계자와 김병주(78kg급 금메달) 정훈(71kg급 금메달 이상 한국) 황재길(95kg 이상급 금메달) 박학영(60kg급 동메달 이상 북한) 등 남북한 메달리스트들이 대동강 잉어회와 룡성 맥주 평양 냉면 등을 나누며 같은 종목 경기인으로서 정을 나눴다.

한국 스포츠 팬들에게 북한 유도 선수는 애틀랜타 올림픽 결승에서 당시 무적을 자랑하던 일본의 다무라 료코(2003년 프로 야구 선수 다니 요시토모와 결혼해 다니 료코로 개명)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계순희(桂順姬)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계순희는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 소감뿐만 아니라 여러 국제 대회에서 자신을 응원해 준 남녘 동포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아 스포츠 팬들에게 호감을 샀다.

계순희는 2003년 9월 오사카에서 열린 세계유도선수권대회 57㎏급 결승에서 이본 보에니시(독일)와 맞서 절반을 따낸 뒤 기권을 이끌어 내며 우승했다.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52kg급을 거쳐 이 체급까지 올라간 것이다.

계순희는 새로운 체급에서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사벨 페르난데스(스페인)와 2001년 세계선수권대회 2위 데보라 흐라벤스틴(네덜란드)을 각각 8강전과 준결승전에서 한판으로 제압하는 등 강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뛰어난 경기력을 보인 계순희는 다무라 료코를 제치고 이 대회 여자부 최우수 선수의 영예도 안았다.

계순희는 금메달을 따낸 뒤 우승 소감에서 “애틀랜타 올림픽 이후 마음고생을 했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흘린 땀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 줘 기쁘다”면서 “조국[북한]과 성원을 보내 주신 남조선 인민, 70만 재일 동포에게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계순희는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를 비롯한 각종 국제 대회에서 한국 취재진이 쏟은 특별한 관심과 한국 스포츠 팬들의 성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계순희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52kg급)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57kg급) 그리고 세계선수권대회 4연속 우승(2001년 뮌헨 대회 52kg급 2003년 오사카 대회 2005년 카이로 대회 2007년 리우데자네이루 대회 이상 57k급)으로 한민족의 유도 실력을 전 세계에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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