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스포츠팀] "선수들이 조금만 더 체계적인 과정에서 준비를 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웠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대표팀을 주장으로 이끌었던 기성용(29, 뉴캐슬 유나이티드)은 운영의 아쉬움을 말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러시아 현지에서 취재진을 맞아 “한국 축구는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이 변화는 한국이 16강에 오른다고 하더라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복된 실수는 실수가 아니라 실력”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이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은, 기적같은 독일과 최종전 승리에도 1,2차전의 무력한 패배와 이를 야기한 부실한 준비 과정에 대한 비판을 지울 수 없다.
한국 축구에 16강은 당연한 일은 아니다. 안방에서 치른 2002년 한일월드컵에 첫 승을 거뒀고, 처음 조별리그를 돌파했다.
하지만 2006년 독일월드컵 1승1무1패 탈락, 2010년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 진출,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등 꾸준한 성과를 내던 한국 축구가 최근 두 번의 월드컵에서 세계 축구와 극심한 격차를 느끼며 추락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대표팀 성적과 달리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U-17 월드컵 16강 진출 등은 성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성적은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에 미치지 못하고, 원정 U-20 월드컵에서 최근 두 차례나 8강에 오른 가운데 안방에서 16강 탈락에 그친 것도 목표 달성에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 출마 당시 국제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한 정몽규 회장은 2022년 카타르월드컵 4강을 구체적 목표로 언급한 바 있는데, 취임 후 두 번의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경험했다. "지명도가 높은 국가와 A매치를 더 많이 추진해 선수들의 기량 향상과 FIFA 랭킹 상승을 꾀하겠다"고 했던 말도 지켜지지 않았다.
◆ 욕받이된 대표팀, 여론 무관심과 비난에 위축 '흥행성도 추락'
최근 두 번의 월드컵에서 나타난 가장 큰 특징은 대표팀에 대한 절대적 지지와 성원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대표팀 감독과 선수들이 적폐로 내몰리고, ‘어디 잘하나 보자’는 도마 위에 올랐다. 감독도 선수도 실수와 패배에 대한 부담이 컸고, 그래서 위축됐고, 그래서 120% 자기 실력을 발휘해야 할 무대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장기 계획을 갖고 뚝심있게 운영되지 못한데다, 자신감과 지지까지 얻지 못한 채 전장에 내몰린 환경적 문제가 제일 컸다. 그 결과가 대표팀 경기의 가치와 흥행성 추락이다.
이기지 못한 대표팀은 FIFA 랭킹이 떨어져 평가전 상대 섭외에 애를 먹었다. 자금력도 부족해져 좋은 상대를 초청하기도 어려웠다. 대표팀 경기를 찾는 관중 수가 급감했고, TV 시청률도 떨어졌다. 이로 인해 수익이 줄어든 축구협회는, 대표팀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하기 어려운 악순환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협회는 대표팀 지원을 위한 최선책이 아닌 차선책 내지 차악을 택해야 했고, 두 대회 모두 부임한지 1년만에 팀을 만들어야 했던 두 감독이 공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으며 선수를 선발하고 실험한 끝에 시행착오를 극복하지 못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근본적 원인은 협회에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21세기 들어 최악의 성적을 냈다는 이 두 번의 월드컵 모두 2013년 초 부임한 정몽규 회장 체제에서 치렀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은 구체적으로 협회의 판단력과 결단력에 아쉬움을 표했다.
“잘라야할 때 못 자르고, 버텨야할 때 못 버텼다. 결국에 여론에 밀려서.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고 해임하는 문제에서 잘못했다. 조광래 감독은 믿고 가야 했고, 슈틸리케 감독은 더 빨리 잘라야 했다. 홍명보라는 유망한 감독을 잃은 것에 이어 신태용 감독도 그렇게 잃을 위기에 처했다."
슈틸리케 감독 경질 타이밍에 대해선 축구계 인사 대부분이 비슷한 의견을 내고 있다. 최순호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의 생각도 같다. "이번에 스페인과 일본의 감독 경질 사례를 보면, 단호하다.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1998년 차범근 감독을 경질할 때는 단호했는데, 그때는 하지 말아야할 걸 한 거고. 이번엔(슈틸리케 감독 경질을) 빨리 해야할 것을 못한 거다. 행정력의 차이다."
◆ 우유부단, 중심 못 잡는 축구협회…슈틸리케 실패는 협회의 행정력 실패
한국축구의 문제가 뭔지 모르는 이는 없다. 월드컵 첫 승에 목마르던 1990년대부터 진단은 잘 했다. 문제는 처방과 실행이었다. 이영표는 러시아월드컵 현장에서 대표팀의 고전에 아쉬움을 표하며 직설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가 뭔지는 다 안다. 문제는 알고 있는데 안하는 것.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아는데 안하는 것. 아는데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과 같다. 좀 더 솔직히 얘기하면, 협회가 보여주기에 강했다. 브라질월드컵에 얘기한 심리 담당 코치(멘털 코치), 그것도 지금 안하고. 나오니까 한 거지 필요하니까 한 게 아니다. 본질에 충실한 게 아니라 그저 밖에 보여주는 것, 보여주기식 행정이다. 실제로 정말 팀이 강해지기 위한 행정이 아니다. 협회가 그 태도를 바꿔야 한다.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힘들다. 진짜 옳고 그른 게 뭔지 결정하고 그걸 하면 되는데 계속 밖의 눈치를 본다. 옳다고 생각하면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말아야 한다. 이런 걸 끊어야 한다.”
대표팀은 독일과 경기에서 승리를 통해 투혼을 보여줬고, 간신히 떠나가는 팬들의 마음을 붙잡았다. 국제축구연맹은 한국의 경기를 아시아 시청자들이 보기 편한 밤 9시(스웨덴전), 밤 12시(멕시코전), 밤 11시(독일전)에 배치했다. 아시아 예선 및 평가전을 외면했던 팬심은 지상파 3사 합계 평균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통해 여전한 기대와 관심으로 돌아왔다.
스웨덴전과 멕시코전은 그런 점에서 아쉬웠다. 이번에 잘 했다면 침체된 한국축구와 K리그는 도약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다. 절호의 기회였는데,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독일전 승리로 희망의 불씨를 간신히 살린 정도다.
◆ 카잔의 기적에 취하지 말라…변수 아닌 상수돼야 하는 대표팀
카잔의 기적에 안주해 협회가 운영 방향에 대한 자세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우리에겐 월드컵 승리와 대표팀의 흥행이 기적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이영표의 작심 발언은 울림이 크다.
“나를 포함한 축구인의 문제가 첫번째다. 팬들은 좋은 경기를 즐길 권리가 있다. 선수들은 솔직히 드러난 현상에 대한 피해자다. 선수는 현상이고 원인은 환경, 시스템, 지도자 등이 복합되어 나온다. 이번 대회가 끝나면 협회, 감독, 선수 등 모두가 본질적으로 얘기를 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기보단 한국 축구가 잘하려면 뭘 잘해야 되는지를 논의해야 한다. (브라질월드컵 때)16강에 못 가고, 협회가 바꾸겠다고 했지만 도로아미타불이었다. 그 때 내가 한 얘길 그대로 녹음해 돌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얘기도 4년 전 그대로다. 4년 후에도 그대로 그 얘기를 반복할 것이다.”
협회는 지난해 11월 히딩크 감독 선임 논란 당시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했다. 하지만 이 인사개편이 결정적으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선 그만한 권한이 필요하고, 수장인 정몽규 회장의 혁명적 결단이 필요하다.
“최근 (홍)명보 형과 (박)지성이가 협회에 들어간 것은 좋게 보고 있다. 긍정적이다. 협회가 발전하고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올바르고 긍정적 평가를 해야 한다. 다만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혁명이나 환골탈태 혹은 전면적 변화가 있어야 발전이 가능하다. 근본적 세팅을 잘 하고, 혁명이 있으면 10년 내에도 가능하다. 그런 변화 후 선수들이 자라고 기다리는 시간이 15년이다. 지금 해도 15년 걸린다.”
한국 축구가 정상화되려면 지금 시작해도 10년이 걸린다. 지체하면 할수록 더 늦어진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때가 왔다. 유소년 육성과 K리그 흥행이 대표팀 성적의 기반이다. 그런데 대표팀이 흥행하지 못하면 이를 위한 투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 떨어진 대표팀의 매력과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지난 6년간 대표 팀이 망가진 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대표팀의 성적이 기적이나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될 수 있도록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다. 혁명적 결단이 필요하다.
스포티비뉴스 스포츠팀(류재규, 한준, 정형근, 박주성, 조형애, 김도곤, 유현태, 이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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