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사진)는 다음 달 7일(한국 시간) UFC 229 메인이벤트에서 코너 맥그리거와 라이트급 타이틀을 놓고 자웅을 겨룬다. 이 경기는 스포티비 온과 스포티비나우(www.spotvnow.co.kr)에서 시청할 수 있다.
[스포티비뉴스=박대현 기자] 정신을 바짝 조여야 한다. 한걸음 삐끗하는 순간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하빕 누르마고메도프(30, 러시아)는 다음 달 7일(이하 한국 시간) UFC 229 메인이벤트에서 코너 맥그리거(30, 아일랜드)와 라이트급 타이틀을 놓고 주먹을 맞댄다. 본인의 첫 타이틀 방어전.

방아쇠는 이미 당겨졌다. 21일 미국 뉴욕에서 '입씨름'을 벌였다. 실질적인 1라운드.

누르마고메도프는 버거워 했다. 그는 UFC 229 프레스 콘퍼런스에서 맥그리거 상대가 되지 못했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렇다. 시종 분위기를 장악한 맥그리거 입과 술(酒)을 제어하지 못했다. "실력은 탁월한데 스타성이 부족하다"란 반응이 나왔다.

맥그리거는 자꾸 챔피언 말허리를 끊었다. 말머리는 선점하면서 상대 말꼬리는 잡고 늘어졌다. '생일 축하주' 멘트가 절정이었다. 끈질기게 신경을 긁었다. 누르마고메도프 표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굳어졌다. 기자석 질문도, 데이나 화이트 대표 시선도 점점 맥그리거에게로만 향했다.

묘하게 오버랩되는 지점이 있다. 단순 기자회견장 분위기만 가리키는 게 아니다. 또다시 맥그리거의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이 고개를 내미는 모양새다. 돌아가는 꼴이 그렇다. 많은 파이터들이 겪었다. 누르마고메도프도 '근자감 파이터' 맥그리거와 0라운드(pre-round) 싸움에서 밀리는 형국이다. 

맥그리거는 늘 이래왔다. 경기 전후를 자기 페이스대로 끌고갔다. 

자신을 광대에서 위대한 파이터로 만들어준 이 특유의 자신감을 무기로 여러 파이터를 곤경에 빠뜨렸다. 이른바 기(氣) 대결에서 한 수 더 쥐고 들어갔다.

UFC 역사상 4번째로 2개 체급을 석권한 이 스타 파이터는 이기는 법을 안다. 이번 판 역시 자기 페이스대로 끌고가기 위해 노력 중이다. 첫 단추는 상당히 잘 끼웠다. 전 세계 스포츠 언론 헤드라인을 제 얼굴과 '프로퍼 트웰브'로 채웠다.

▲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데이나 화이트 UFC 대표, 코너 맥그리거(왼쪽부터)
누르마고메도프는 기자회견장을 떠난 뒤 트위터에 "모든 알코올 중독자는 똑같은 결말을 맞는다"고 적었다. 위스키를 들고나와 얼근하게 취한 맥그리거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나쁘지 않은 대응이다. 그와 대결은 장외서부터 시작된다. 주먹 다툼 이전에 말싸움부터 지지 말아야 한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듯…조제 알도라는 반면교사

2015년 12월 조제 알도는 맥그리거에게 왼손 펀치를 맞고 쓰러졌다. 굴욕적인 KO패. 단 13초 만에 7년 동안 지켜온 페더급 챔피언 벨트를 빼앗겼다.

그 당시 알도는 페더급 최강자였다. 지금과 입지는 천지차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폭군'이란 별명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70%가 넘는 테이크다운 성공률과 타격 회피율은 그가 어떤 파이터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공수에서 가장 완벽한 밸런스를 자랑하는 파이터, 어떤 전략도 별무소용으로 만들어버리는 이길 수 없는 선수가 알도였다. 지금 누르마고메도프가 누리는 지위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더 큰 위압감을 지닌 선수가 알도였다.

그런데 경기 전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맥그리거의 끝없는 SNS 도발과 대중 시선을 확 잡아채는 언론 인터뷰, 사전 기자회견에서 맹활약은 판을 요동치게 했다. 

늘 터무니없는 자신감을 실제 결과로 증명해온 그였다. 그 '기세'에, 라이트 팬과 코어 팬은 물론 단체(UFC)와 도박사마저도 홀리듯 손을 내밀었다. 맥그리거의 허무맹랑한 말에 설득을 당한 것이다. "그래도 알도인데..."에서 "정말 이기는 거 아냐"로 분위기가 묘하게 방향을 틀었다.

베스트파이트오즈가 내놓은 배당률 평균치가 상징적이다. 이 사이트는 12개 대표 베팅 사이트가 책정한 배당률을 평균치로 산출하는 곳. 

베스트파이트오즈에 표기된 알도 승리 확률은 44.8%, 맥그리거는 55.1%였다. 약 7년 가까이 체급을 지배했던 파이터가 상당한 차이로 언더독에 배정됐다. ESPN은 "광대가 장외 싸움에서 폭군을 제압했다"며 이 급격한 판세 변화를 예의주시했다.

결국 알도는 맥그리거에게 무릎을 꿇었다. 케이지 한 켠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이 장면은 그의 울보 이미지 시발점이 됐다. 단 한 경기 패배로, 알도는 많은 것을 잃었다.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맥스 할러웨이에게 2연패하며 타이틀 컨텐더 지위를 상실했다. 거의 10년 만에 3라운드 경기를 치르는 수모도 겪었다. 울보 이미지만 새로 얻었다. 제레미 스티븐스를 잡으며 재기 가능성을 높였지만 이제 누구도 그를 폭군으로 여기진 않는다.

최강자가 가장 비참해지는 순간은 권좌에서 내려올 때다. 특유의 아우라가 사라지면 너도나도 덤벼든다. 알도가 딱 그 꼴이었다. 호시탐탐 권력을 노리던 강력한 영주들이 일거에 반란을 일으켰다. 형세가 그랬다. 

현재 알도는 라이트급 월장을 준비하고 있다. 더는 페더급에 자기 지분이 많지 않음을 직시하고 옛 영광(몸값)을 회복하기 위해 우회로를 걸으려 한다. 제왕이었던 자가 지금은 한껏 '책사의 몸놀림'을 보이고 있다.

누르마고메도프는 조심해야 한다. 알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어쩌면 이번 타이틀전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대결일는지 모른다. 맥그리거와 싸움이라서 더 그렇다. 다른 파이트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맥그리거와 대결은 신경써야 할 부분이 많다. 졌을 때 타격이 너무 크다. 단순히 챔피언 벨트만 내주는 차원이 아니라 정신적 데미지까지 고려해야 한다. 

현 챔피언이 누리고 있는 MMA 무패 신화나 역대 최강 그래플러라는 칭호, 곰과의 스파링 전설 등이 눈녹듯 사라질 수 있다. 단 한 경기 패배로 많은 권력을 잃을 수 있다. 

마이클 존슨과 경기 때 희미하게나마 약점이 노출됐다. 처음으로 얼굴에 피를 흘린 채 경기를 끝냈다. UFC 10경기 만에 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물론 존슨을 테이크다운으로 15분 내내 괴롭히긴 했지만 무언가 '틈'이 보였다. 

상대 허리 아래를 장악하려 들어갈 때 존슨에게 왼손 하드 펀치를 꽤 맞았다. 움찔하고 뒷걸음질치는 모습도 보였다. 글로벌 스포츠 매체 '스포츠키다'는 이 부분에 물음표를 던졌다. 

이 매체는 "(얼굴에 꽂힌 게) 존슨 왼손이 아니라 맥그리거 왼손이라면? 존슨과 맥그리거는 똑같이 타격에 강점을 지닌 사우스포다. 상대가 (맥그리거로) 바뀌었을 때도 과연 하빕은 묵묵히 전진 스텝을 밟을 수 있을까. 꿋꿋이 맷집으로 버텨 그래플링을 시도할 수 있을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르마고메도프는 이 점을 고민해야 한다. 

경기 전략을 몇 배 더 치밀하게 짜야 한다. 현 챔피언에게 이번 라이트급 타이틀 1차 방어전은 생각보다 많은 열매가 걸려 있다. 그 열매가 천도(天桃)일지, 아니면 독사과일진 아직 모른다. 온 역량을 이번 매치에 기울여야 한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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