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를 따라 플뢰레를 시작한 쌍둥이 딸들. 쌍둥이 언니 최유진, 최명진 여자 플뢰레 국가 대표 팀 코치이자 쌍둥이 아빠, 동생 최유민(왼쪽부터). ⓒ 화성, 김민경 기자
[스포티비뉴스=김민경 기자] "어휴, 너무 긴장했네. 저게 긴장해서 그렇거든요. 큰 애가 자신감이 떨어져 보이네요."

제 55회 전국남녀종별펜싱선수권대회가 열린 15일 경기도 화성시 화성종합경기타운 체육관. 중경고등학교와 창문여자고등학교의 고등부 여자 플뢰레 단체전 결승이 열리고 있는 피스트를 지켜보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최명진 여자 플뢰레 국가 대표 팀 코치였다. 최 코치는 쌍둥이 딸인 유진(17) 유민(17, 이상 중경고 2학년) 자매의 경기 시간에 맞춰 체육관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유진, 유민 자매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빠를 따라 검을 들었다. 최 코치는 "내가 해온 길이니까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고, 어떤 게 힘든지 뻔히 안다. 섣불리 선택을 못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하는 걸 보고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거 같다. 1명 정도는 가르칠 마음이 있었는데, 둘 다 한다고 했을 때는 망설여졌다. 지금까지는 둘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잘 크고 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대회 여고부 플뢰레 개인전에서는 딸들이 함께 웃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운명의 장난인지 쌍둥이 자매는 16강전에서 맞붙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동생 유민이 언니 유진을 15-14로 누르고 8강에 올랐다. 유민은 결승전에서 박지희(창문여고)를 15-13으로 제압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15일 단체전에서 중경고는 창문여고를 45-38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유민은 대회 2관왕이 됐고, 유진도 개인전의 아쉬움을 달래며 동생과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 코치의 시선은 인터뷰 내내 피스트로 향했다. 딸들의 동작 하나 하나를 모두 눈에 담았다. 그러나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딸들이 알아 차리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최 코치는 "답답하긴 하다. 펜싱을 내가 모르면 상관 없는데 아니까. 자꾸 안 했으면 하는 동작이 눈에 빨리 들어오니까 더 답답하다. 내가 가서 지도해 주고 싶고, 그런 생각이 드는데. 그건 또 딸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들께 예의가 아니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딸들의 경기를 볼 때는 어쩔 수 없이 냉정한 지도자보다 따뜻한 아버지의 눈으로 보게 된다. 최근 작은 딸 유민이 슬럼프를 겪으면서 대회 직전까지 마음고생을 했다. 최 코치는 "유민이가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경기가 잘 안 풀렸는데, 이번에 우승하면서 나아졌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몇 개월 동안 나한테 이야기하더라. 하기 싫다는 이야기도 하고. 많이 답답해 했다"고 털어놨다.  

선수촌에 머물고 있어 딸들과 함께할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시간이 될 때는 도움을 주려고 노력한다. 최 코치는 "대회를 직접 볼 기회가 많이 없으니까. 자기들이 찍어 둔 화면 보여주면 같이 보면서 분석하고 눈에 보이는 단점들을 이야기해 준다"고 했다.

단체전 우승을 확정한 뒤 쌍둥이 딸들은 최 코치에게 달려와 안겼다. 최 코치는 먼저 아빠로서 딸들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대화를 나누며 자연스럽게 딸들이 경기 때 풀리지 않았던 점을 털어놓자 최 코치는 경기를 지켜보며 발견했던 고쳐야 할 점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매는 아빠의 조언을 진지하게 귀담아 들었다.

쌍둥이는 경기를 마친 뒤 "같이 우승해서 뿌듯하고 좋다. 잘 마무리한 거 같아서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빠가 경기를 지켜본 걸 의식하진 않았는지 물었다. 유진은 "이제는 신경 안 쓴다. 중학교 때는 아빠가 지켜보면 긴장하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더 자신감이 생긴다. 뒤에 아빠가 있다는 생각으로 뛰고 있다"고 했고, 유민은 "효도하는 거 같아서 2배로 좋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었다. 

서로 의지하고 경쟁하면서 아빠가 걸어온 길을 조금씩 따라가고 있다. 유민은 "대회 1주일 전까지는 맨날 울면서 했다. 올해 계속 메달을 못 따다가 금메달을 땄다. 그 맛에 하는 거 같다. 안 되면 될 때까지 하고 메달을 따면 뿌듯하다"고 말했다. 유진은 "동생이 계속 우니까 레슨도 잡아주고, 같이 찌르는 연습도 했다. 같이 하니까 많은 도움이 된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는데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남들보다 많이 성장한 거 같다"고 되돌아봤다.

언니는 16강전에서 동생에게 아쉽게 패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유진은 "조금은 실망했지만, 그래도 동생이 우승한 거니까. 우승한 애 한테 진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넘겼다. 다음 해에 우승하면 되니까"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아빠와 함께 선수촌에서 훈련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유진은 "빨리 선수촌에 들어가서 같이 운동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고, 유민은 "나도 같이 아빠 손 잡고 선수촌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며 웃었다. 쌍둥이들은 함께 태극 마크를 달고 여러 국제 대회를 뛰는 날을 상상하며 고된 훈련을 견디고 있다. 선수촌에서 아빠에게 직접 지도를 받으며 올림픽에 나가는 순간도 함께 그리고 있다. 

최 코치는 고생한 딸들에게 맛있는 저녁을 사야 할 거 같다고 하자 "아마 치킨을 사달라고 할 거다. 치킨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며 웃었다. 쌍둥이에게는 집에 가서 가장 먹고 싶은 게 뭔지 물었다.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자매는 한 목소리로 같은 대답을 외쳤다. 

"치킨! 치킨 정말 좋아해요(웃음)."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