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하고 골프채를 한 번도 잡지 않았는데 아직 버릇이 남아 있나 봐요. 티 박스로 들어가 선수들이랑 골프를 쳐야 할 것 만 같은 이상한 느낌입니다. 


오늘(1일)은 US 오픈 1라운드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미국에 도착해서 정말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걱정했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대회장에 도착하기 전에 비표를 받았어요. 비표에는 '1998년 US 오픈 챔피언이라고 적혀 있는데 참 세월이 빠른 것 같습니다.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듯한데요. 제가 골프채를 잡은 후에 처음으로 그것도 갤러리로 로프 밖에서 경기를 보는 것 같아요. 늘 선수 시절에는 궁금했었어요. '팬들은 18홀을 따라다니면서 얼마나 힘들까' 라고 말이죠.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도 선수가 아닌 감독의 눈으로 경기를 지켜봤는데, 그때와 또 느낌이 다르네요. 당시에는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정말 팬으로 즐기고 싶어요. 

에피소드도 하나 있었어요. 1번홀에서 저도 모르게 로프로 들어갈 뻔했어요. 자원 봉사자가 "선수만 들어갈 수 있어요(Only Player)"라고 외치는데 저도 모르게 놀라서 "미안합니다(Sorry)"라고 해 버렸네요. 

길을 가다가 같은 소속사 후배 (박)성현이를 봤어요. 아마 부담이 엄청나게 될 거에요. US 오픈은 정말로 느끼는 중압감이 다릅니다.

페어웨이를 잠깐 밟았는데 습도가 너무 높아서 아직 잔디가 젖어 있네요. 공도 푹 들어가고 아마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성현이한테 물을 많이 마시라고 했어요. 수분 섭취가 정말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런 날은 조금 더 휴식을 취하고 티업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방법이에요. 

오늘은 막내 동생과 함께 라운딩을 돌았는데 막내 동생도 옛 생각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웃으면서 생색을 내네요. 그래도 동생이 있어서 정말 편안하게 투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족이기 때문에 제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정말 잘 알잖아요. 그래서 알아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주 눈치 있게 잘해 줬는데…. 하하. 이 일기를 통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아 맞다. 지나가다 리디아 고 아버님을 뵀어요. 리디아 고는 정말 성장 가능성이 많은 선수예요. 제가 보기엔 약간 성장통이 온 것 같기도 한데 이것만 잘 이겨내면 분명 좋은 선수가 될 것 같아요. 

(최)운정이는 티업 전에 저를 보고 달려와 안기더라고요. 정말 긍정 에너지가 넘치는 후배예요. 너무 착해서 때로는 걱정도 되긴 하지만 정말 기대되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아까 성현이가 중간에서 샷을 하기 전에 멈칫해서 걱정됐는데요. 가까이서 보니까 날파리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습도가 높은 날에는 날파리들이 선수들의 플레이에 방해가 되는데 예민할 수도 있겠지만 잘 이겨냈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4번홀에서는 미국 US 아마추어 챔피언 자격으로 참석한 선수가 벙커에서 공을 그린 위로 올리지 못하고 3번이나 미스샷을 했더라고요. 너무 긴장한 것 같네요. 골프에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상황이죠. 저도 저 기분을 알죠. 정말 하늘을 보고 소리를 치고 싶은 심정일 거에요. 

갤러리로는 처음으로 골프장에 왔는데 너무 즐거웠던 것 같아요. 20주년을 기념하면서 후배 선수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4라운드까지 틈틈이 나와서 후배들을 응원할 예정이에요. 꼭 한국 후배가 우승 퍼트를 하는 그런 감격스러운 장면을 보고 싶네요.

[스포티비뉴스=버밍엄(미국), 영상 및 정리 배정호, 김태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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